농산물우수관리(GAP) 제도의 확대가 대안인가?

- GAP 기준의 역사적 맥락과 먹거리 안전 문제 -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상임연구원 송원규

 

GAP 기준의 등장과 확대

 

국내에서 농산물우수관리 제도라 불리는 GAP(Good Agricultural Practices)의 시작은 199613개의 규모가 큰 농산물 소매기업들이 유럽 농산물 소매업체 그룹(약칭 Eurep)을 구성한 것이었다. 이들은 먹거리 무역의 확대, 먹거리의 세계화 현상으로 소비자들의 식품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자신들이 취급하는 농산물의 품질과 안전성을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킬 방안을 찾았다. 흔히 이야기하는 농장에서 식탁까지의 과정이 안전하게 이루어졌으며, 식품의 품질, 환경에 대한 고려, 동물복지 등 소비자들이 우려하는 요소들을 자신들이 만든 기준에 따라 적절하게 관리했다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한 목적이었다. 말하자면 농산물, 식품을 판매하는 대규모 소매기업들이 일종의 브랜드를 만든 것이었다. 이들은 2007년 이 기준의 명칭을 Eurep-GAP에서 Global-GAP으로 변경하고 계속 가입회원들을 늘려나갔다. 2001년 처음 채소류 및 과일류에 대한 GAP 기준을 마련한 후, 200218개국 3,892 생산자(농가)가 인증을 받았고 소매업체 회원은 22개였던 것이 2013년에는 110개국 131천 생산자(농가)가 인증을 받기에 이르렀다.

Eurep-GAP의 등장 이후 코덱스(Codex) 국제식품규격,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등에서 GAP과 관련한 기준을 제시하고 일본, 미국 등의 국가들도 민간의 주도와 정부지자체의 지원으로 각기 GAP 기준을 만들어 확산하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민간 주도라는 측면이다. GAP은 각국의 상황에 따라 제도화의 과정을 거치기도 하지만, 주로 민간에서 기업들의 자신들이 취급하는 농산물이나 식품(축산가공, 수산가공)의 품질과 안전성을 내세우기 위한 수단이다.

 

국가의 역할을 민간에게로

 

국제적인 GAP 기준의 등장과 확산은 농산물, 먹거리 부문에서 국가의 역할 축소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배경으로 농산물 무역이 확대되고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기구가 무역을 통제하면서 기존에 국가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식량안보, 먹거리 안전 관리가 약화되고 시장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기업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기존에는 국가가 보장하던 사회적인 문제의 책임을 민간의 기업에게 떠넘기게 되었고, 이는 사회적으로 보장되던 식량안보, 먹거리 안전 문제가 개인의 경제력이나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문제로 바뀌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범람하는 수입농산물, 수입식품들 속에서 안전품질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는 소비자들에게 유통기업들이 자신의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산, 유통 과정에서의 안전성 보장, 위해요소 관리에 대한 기준을 만들어 적용하는 것이다. 안전과 품질에 대한 관리를 위한 기준을 세우는 것 자체가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업들의 상품 판매를 위해, 기업 위주로 만들어진 기준을 생산자인 농부, 어부들이 비용을 들여 지켜야하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 문제다. GAP은 해썹(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을 기본적인 과정으로 포함한다. 해썹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설투자 비용이 발생하고 이 비용은 최종 판매자인 유통기업(소매업체)가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와 생산자단체 등이 부담하게 된다.

 

GAP의 확대가 먹거리 안전의 대안인가?

 

농림축산식품부는 최근 GAP 제도의 개선방안을 내놓고, 이를 통해 인증과 관련한 생산자의 편의성은 늘어나고 먹거리 안전성은 높아질 것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GAP 인증 절차를 간소화하면 농민은 인증 받기가 쉬워지고, GAP 인증 농산물이 늘어나면 그만큼 소비자의 먹거리가 안전해진다는 논리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자면, 우리나라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GAP 제도 관리의 주체이고 이렇게 정부가 나서고 있으니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인증은 농관원이 지정한 민간 인증기관에 의해 이루어지고 정부는 문제에 발생했을 때 관련자들을 법에 근거해 처벌하는 역할에 불과하다. 실정은 이러함에도 정부는 마치 GAP이 대안적인 인증제도인 것처럼 홍보하고 경작면적 기준으로 현재 3%GAP 인증을 2017년까지 30% 수준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GAP 인증의 확대가 먹거리 안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부가 GAP의 확대를 최근 친환경농산물 인증 문제 등으로 불거진 먹거리 안전 문제의 대안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주변의 우려를 되새겨야 한다. 먹거리 안전은 제도나 인증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먹거리체계의 개선과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과정에 참여하는 각 주체들의 합의와 노력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 위 글은 식량닷컴(2015. 4. 15.) 기고글의 수정본입니다.

기사따라가기 : http://www.masongfood.com/news/articleView.html?idxno=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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