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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식품법의 불편한 얼굴

[419호] 승인 2015.10.15  09:13:11   |  송기호 (변호사)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 가게에서 사과를 산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식품은 눈에 보이지만 그 너머의 지배자는 보이지 않는다. 식품 뒤에는 식품법이 있어서 식품의 운명을 결정한다.

깊은 바다 속의 바닷물은 인류의 역사보다도 더 오랫동안 존재했다. 그러나 그 바닷물이 ‘해양심층수’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식탁에 올라올 수 있게 된 것은 법의 힘이다. 2008년 ‘해양심층수의 수질 기준’이 탄생한 뒤에야 가능했다. 미국 몬산토의 유전자조작(변형) 식품도 1999년에 ‘유전자재조합 식품 안전성 평가자료 심사지침’이라는 법으로 합법화되기 전에는 금지 식품이었다.

사람들에게 안전한 식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과제는 모든 사회의 숙제이다. 이를 식품 문제라고 한다. 그래서 모든 사회에는 어떤 모습으로든 식품법이 있다. 성경의 레위기는 발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을 하는 가축만 먹을 수 있도록 정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토끼는 발굽이 갈라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돼지는 되새김질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먹지 못한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더러운 물을 마을 우물에 부은 자와 더러운 고기를 푸줏간에서 파는 행위를 ‘독을 옮기는 것(移毒)’이라 규정하고 금지했다.
 

 2014년 12월12일 식품안전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안전한 식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은 모든 사회의 숙제다. 
2014년 12월12일 식품안전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안전한 식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은 모든 사회의 숙제다.


안전하지 않으면 식품이 아니다. 동시에 식품은 사람들이 쉽게 구할 수 있어야만 쓸모가 있다. 풍부히 공급될 때에만 식품으로서 의미가 있다.

식품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땅에서 밥상에 이르는 수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흙과 햇빛과 바다의 힘이 필요하다. 식품을 생산하는 사람의 활동이 순조로워야 한다. 이들 요소는 서로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는, 살아 움직이는 연관체이다. 그래서 식품체계라 부른다. 식품체계가 건강하려면 농업이 살아야 한다. 그래서 식품법은 건강을 지키고 자연환경을 돌보는 농업을 첫째가는 수단으로 삼는다. 나라마다 다른 자연환경에 가장 알맞은 방식의 농업을 북돋우고 지원한다.

조선총독부의 식품법을 그대로?

그러나 한국 식품법은 태생적으로 농업이라는 모태를 존중하지 못했다. 오히려 한국 농업에 터 잡은 식생활을 천시하고 돌보지 않았다. 대신 미국의 농산물과 식품공장과 의약품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역사의 비극이었다. 군사 쿠데타의 산물인 국가재건최고회의가 1962년 1월에 식품위생법을 처음 만들 때까지 조선총독부 식품법을 그대로 사용했다. 일제의 식품법은 조선의 식품체계를 비위생적이고 열등하다는 전제 아래 경찰력을 동원해 개조하고자 했다. 조선 곳곳의 지역 식품체계가 소규모라 비위생적이라고 낙인찍었다. 조선 방방곡곡에 있는 지역 양조장을 제거했다.
 

그 배경에는 일본 본토의 대규모 술 산업을 이식하고 조선 술 산업을 대규모화해서 식민지 지배에 필요한 재정 수입을 마련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총독부가 유포한 소규모 공급자는 비위생적이고 대규모 공급자보다 열등하다는 이데올로기는 지금도 위력이 크다. 식민지 식품법의 관점이 지속되는 한, 영세한 자작농과 식품 생산자들은 모두 청산되어야 할 대상이다. 대규모 식품회사가 식품체계를 주도하게 된다.

식민지 조선의 식품체계 비위생론은 군사독재 시대에도 계속되었다. 1969년에 국민영양개선령을 만들었다. 우리 농업에 기초한 식생활이 열등하다고 가르쳤다. 여기에 영양학을 본격 동원했다. 영양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쌀 중심의 전통적 식생활이 영양학적으로 열등하다는 논리를 끊임없이 제공했다.

예를 들면 한국영양학회가 만든 <한국영양학회지> 1970년호에는 쌀을 주식으로 섭취하는 나라에서는 영양장애로 인해 성장 장애, 발육 장애, 성장 지체, 비타민 A 결핍증이 나타나고 있다는 내용의 논문이 실렸다. 쌀 중심의 식생활을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영양학이다. 그 배경에는 미국의 밀가루가 있다. 국민영양개선령을 만든 해에 미국에서 들여온 잉여 밀과 밀가루는 모두 135만9185t에 이르렀다.

 

 <div align=right /><font color=blue>ⓒ부산박물관 제공</font> 
ⓒ부산박물관 제공
 일제의 식품법은 조선 지역 양조장(맨 위)을 제거했다. 1969년 혼분식 장려운동(위)의 배경에는 국민영양개선령이 있다. 
일제의 식품법은 조선 지역 양조장(맨 위)을 제거했다. 1969년 혼분식 장려운동(위)의 배경에는 국민영양개선령이 있다.

식품체계를 지탱하는 농업의 의의를 부인하는 식품법은 군사독재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김천에서 저농약 친환경 농법으로 자두 농사를 짓는 농민이 있었다. 제초제를 뿌리지 않고 유기질 퇴비로 자두를 길렀다. 그는 자두가 피로 해소는 물론이고 산성 체질을 개선하고 신장병·골다공증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는 과학 지식을 자신의 농장 누리집에 올렸다가 처벌을 받았다. 자두를 의약품으로 혼동할 우려가 있는 광고를 했다는 이유에서다.

의약품이 국민 건강에 이바지하는 바는 크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은 자두와 같은 일반 식품을 의약품으로 혼동하지는 않는다. 일반 식품이 건강에 주는 좋은 기능을 알게 하는 것은 사기 의약품을 단속하는 일과는 별개의 차원이다.

이른바 건강기능식품 제도라는 틀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식품법은 기능성 원료나 성분을 사용해 제조한 식품으로 따로 승인을 받은 것만을 ‘건강기능식품’이라고 부른다. 농업에 기초한 식품의 보편적 건강기능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식품은 그 자체가 건강한 생활 기능의 유지를 위한 것이므로 식품인 한, 건강기능식품이 아닌 것이 없다.
 

 


오늘 내가 먹은 게 유전자조작 식품일 수도 있다

해마다 국가 예산 약 14조원을 농업에 지원한다. 그러나 농업을 살리는 것은 돈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4년 기준으로 농업이 사람들과 가축의 먹을거리 중 24%밖에 공급하지 못할 만큼 위기에 놓인 데에는 식품법의 잘못이 매우 크다. 돈을 농업에 더 지원하는 것 못지않게, 식품체계에서 농업의 기초적 의의를 북돋우는 식품법으로 전환해야 한다.

새로운 식품법은 한국의 소농을 중시해야 한다. 소농은 한국의 자연환경에 적합한 식품체계이다. 좋은 식품법으로 소농과 식탁을 이어주어야 한다.

세계 식품체계의 현실을 냉정히 보자. 모든 국가는 자국민에게 필요한 식품을 먼저 공급한 후 남는 것이 있으면 비로소 외부에 공급한다. 자국이 생산한 식품의 우선권은 자국민에게 있다. 식품 무역은 이러한 한계와 범위 안에서만 작동한다. 세계에서 생산된 농산물의 약 8%만이 교역될 뿐이다. 식품 무역 자유화라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논리가 뛰어다닐 수 있는 운동장은 매우 좁다.

식품 자급을 하려면 소농 체제에 터 잡은 식품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학교 급식을 보자. 나는 2010년에 출판한 <맛있는 식품법 혁명>에서 소농에 근거한 학교 급식을 구상했다. 지역의 소농과 조리사의 지위와 역할을 식품법이 인정할 것을 촉구했다.

조리사는 메뉴를 개발하며, 무엇을 요리할지 구상하고, 그에 가장 적합한 식재료를 취사선택하며, 공동으로 조리를 하며, 조리된 식품을 평가하고, 조리를 교육하는 과정을 통해 한 사회의 식품체계에서 농장과 식탁을 이어준다.

하지만 조리사들은 법적으로 급식의 원료 식품을 검수할 권한조차 없다.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 장관은 1989년,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에서 식재료 검수를 영양사의 직무로 규정해버렸다. 이것은 법률의 근거가 없다.

책 발간 후 학교 급식 조리사들은 식재료 검수를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부족하다. 조리를 하는 조리사들이 영양사와 함께 식재료를 검수할 수 있어야 한다. 영양사와 조리사가 협력해서 지역의 소농에 적합한 메뉴를 풍부하게 개발하고, 신선하고 친환경적인 지역 식재료를 더 많이 학교 급식에 사용해야 한다.

좋은 식품법의 또 하나의 숙제는 유전자조작 식품에 대한 대응이다. 유전자조작 농법은 미국 식품체계의 특징이다. 한국 소농의 장점을 해친다. 미국은 유전자조작 식품을 옹호하는 식품법을 세계 규범으로 만들려고 한다. 미국에는 유전자조작 식품 의무표시제가 없다. 오히려 이를 무역 장벽으로 규정한다.

세계 식품법 전쟁의 상황에서 한국 식품안전기본법은 엉뚱하게도 식품의 안전 기준과 규격을 정할 때 세계무역기구와 국제식품규격위원회의 국제적 기준에 ‘맞게’ 제정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정했다. 나는 앞의 책에서 이를 비판했다. 이 부분은 국제적 기준과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고 개정되었다.

그러나 아직 매우 부족하다. 지금의 유전자조작 식품 표시제도로는 아기들이 유전자조작 식품을 먹었는지 알 길이 없다. 유전자조작 식품을 상위 5대 주요 원료로 사용하지 않으면 유전자조작 식품인 사실을 표시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식용유와 같이 유전자변형 DNA 또는 유전자변형 단백질이 남아 있지 않으면 표시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런 식품법에서 어른들조차 자신이 유전자조작 식품을 먹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새로운 식품법은 유전자조작 식품임을 완전히 표시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유전자조작 식품이 과연 안전한가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엄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좋은 식품을 찾는다. 그러나 좋은 식품만큼 좋은 식품법이 필요하다. 식품 뒤에 있는 법을 알아차리고 바꿀 때이다.


 <div align=right /><font color=blue>ⓒ시사IN 조남진</font>학교 급식(위)을 담당하는 영양사와 조리사는 지역 소농에 적합한 메뉴를 풍부하게 개발하고 사용해야 한다. 
ⓒ시사IN 조남진
학교 급식(위)을 담당하는 영양사와 조리사는 지역 소농에 적합한 메뉴를 풍부하게 개발하고 사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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